Stay Hungry. Stay Foolish

사용자 삽입 이미지

1박2일 백두산편을 보면서 그전에도 그랬지만, 빨리 통일이 되어야 겠고, 국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백두산의 절반은 중국에 있고, 절반은 북한에 속해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북한을 통해서 백두산 관광도 개설될 수도 있다고 하니 하루 빨리 그렇게 되기를 바랬다.

그런데, 구글맵으로 지도를 보는데, 이게 왠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두산 천지가 모두 중국쪽에 들어가 있지 않은가? 여기 있는 흰색 국경선이 맞는지... 맞다면 북한을 통해서 천지를 갈수 있는지, 천지 전체가 중국 국경안에 속하는 건지.. 안타깝다... 구글에서 국경이 틀리지는 않을텐데... 누구 정확하게 아시는분 계신지..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이 백두산을 자기나라 명산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는데.. 큰일이군...

요즘 독도 문제로도 말이 많다. 우리나라 땅인데도,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그러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일본 말대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으니, 이 또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러다가 우리나라만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세상사가 다 힘있는 자들의 생각대로 돌아가니.. 울 나라도 국력을 키우고 체계적이고 학술적으로도 우리의 주장을 펼쳐야하겠다.

참고로 구굴맵보면 지도에 각 나라 명칭을 영어와 함께 각 나라 도시 이름을 그 나라 언어로 기술해놓고 있다. 중국 지명은 영어와 함께 한자, 일본 도시는 영어와 함께 일본어로... 근데 우리나라는 뭐여.. 딸랑 South Korea가 다네... 대만도 몇개 적혀 있고만... 이러니 독도는 말해뭐하랴.. 울릉도 독도에는 아무 말도 안 적혀있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Goo M.D. Trackback 0 Comment 0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합동 군사훈련 중인 중국과 카자흐스탄의 기마 부대가 26일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이닝(伊寧) 사막 지대를 일렬로 통과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차량은 물론 사람도 지나가기 힘든 협곡이 많아 훈련에 투입된 군인들은 일렬 행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양국의 합동 훈련은 최근 에너지 협력을 강화한 두 나라가 송유관 테러 등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실시됐다.
* reference : http://www.joins.com/article/2429874.html?ctg=1300

아직 저런 기마부대가 있다니 놀랍다... 멋지네...
테러에 대한 공동 대응을 마련하기 위해 시행한 합동 군사 훈련이라는데... 말은 타지만, 무기는 총이겠지... 칼도 들고 다니려나.. ^^
Posted by Goo M.D. Trackback 0 Comment 0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국의 명절

원단(元旦)

정월 초하루날, 즉 설날이다. 지금은 양력 정월 초하루를 원단이라 하고 음력 정월 초하루를 신년 (新年)또는 춘절(春節)이라고 한다.

원소절(元宵節)

정월 보름날이다. 이날은 상원절(上元節) 또는 등절(燈節)이라고도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漢)나라 때, 권력을 천탈하였던 여후(呂后)가 죽고난 뒤 주발(周勃), 진평(陳平) 등의 사람들이 여러 여씨(呂氏)들을 몰아내고 유항(劉恒)을 세워 천자로 삼았는데, 이사람이 문제(文帝)이다. 문제는 여씨를 몰아낸 이날이 정월 보름이었기 때문에 이날밤 변복하고 궁문을 나서 백성들과 함께 즐기면서 이날을 기념하였다 한다. 당대(唐代)이후부터는 조정에서 매년 이날 등불을 켜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했는데, 이것이 민간으로도 전해져 지금까지 이날밤에는 등불놀이를 하고 있다.

한식절(寒食節)과 청명절(淸明節)

동지(冬至)후 105일 되는날이 한식절 이틀 뒤가 청명절이다. 이 두 명절은 춘추시대 진(晋) 문공(文公)인 중이(重耳)가 개자추(介子推)를 애도한데서 비롯된다.
B.C 655년, 중이가 왕위에 오르기전 계모의 음모를 피하기 위하여 개자추 등의 대신들과 외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 어느날 중이가 굶주려 땅에 쓰러지자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다리의 살을 베어내 중이에게 삶아주었다. 19년 뒤 중이는 자기 나라로 돌아와 왕위에 올라 공신들에게 상을 내렸지만, 개자추만은 잊어버리고 아무런 상을 내리지 못했다.
개자추는 자신의 공을 다투기가 싫어 어머니와 함께 면산(綿山)으로 은거해 버렸다. 진문공은 이 사실을 알고난 후 친히 면산으로 가서 그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진문공은 개자추가 효자라는것을 알고서 산에다 불을 지르면 개자추가 자기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산에서 내려올 것이라 생각하고 산에 불을 질렀지만 결국 개자추 모자는 큰 버드나무를 꼭 끌어안고 불에 타 죽어 있었다. 버드나무의 구멍속엔 정치를 청명하게 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옷깃에 혈서로 쓴것이 있었다. 문공은 개자추를 추모하기 위해 산에다 불을 지른 그날을 한식절로 정하고, 이날만은 불을 지피지 말고 찬밥을 먹도록 하고, 이틀뒤를 청명절로 정하였다. 그러나 대략 당, 송대 이후부터 사람들은 한식절에서 청명절까지의 3일안에 성묘를 하고 조상에 대한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

단오절(端午節)

음력 5월 5일이 단오절이다.
단오절은 원래 고대 중국민족의 전설상의 조상으로 여겨왔던 용을 제사하는 용자절(龍子節)이었는데, 후대 사람들은 이날을 굴원(屈原)이 조국인 초(楚)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지만 끝내 비방과 참소를 받아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은것에 연관시켜 굴원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굴원이 멱라강에 자살했을때, 그 지역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체를 뜯어 먹을까 걱정하여 찹쌀을 대잎에 세모나게 싸서 찐 종자(綜子)라는 것을 고기먹이로 던지며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배를 타고 시체를 찾았다 한다.
후세에 와서도 이러한 유습을 이어받아 단오절이 되면 종자를 제물(祭物)로 강에 던지면 용선(龍船)경기를 하고 있다.

칠석절( 七夕節)

음력 7월 7일이다. 7월7일 저녁은 견우성과 직녀성이 서로 만나는 밤이라 하여 여자들은 오색실을 매여가지고 칠공(七孔)바늘에 끼며 술과 과일을 뜰에 차려놓고 직녀에게 재주를 빈다고 한다. 또 이시기는 우기(雨期)이어서 비가 많이 오는데 사람들은 바로 견우와 직녀가 만나 눈물을 흘리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중추절(中秋節)

음력 8월 15일이다. 우리나라의 추석이다. 이날은 달처럼 동그란 월병(月餠)이란떡을 먹으며 달을 감상하는 명절이다.

중양절(重陽節)

음력 9월 9일이다. 옛날에 육(六)을 음수(陰數)로 하고 구(九)를 양수(陽數)로 하였는데, 바로 9월 9일을 두개의 양수인 9가 겹쳐있기 때문에 중양절이라 하였다. 옛사람들은 이날이 되면 높은 산에 올라가서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사람이 그의 제자였던 여남(汝南)의 환경(桓景)에게 "9월 9일 자네의 집에 큰 재난이 닥칠것이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 집안 사람들에게 붉은 주머니에 수유(茱萸)를 넣어 어깨에 메고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면 이재난을 면할것이다"라고 하자 환경이 그 말대로 하였다가 집으로 돌아와보니 과연 집안의 가축들이 모두 죽어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이날에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다른 설도 있다.

동지절(冬至節)

동지는 음력으로 11월 중순이고, 양력으로는 12월 21일에서 23일 사이에 있다. 옛날 중국 북방지방의 사람들은 이날 양을 잡고 만두를 먹으며 탄갱신에게 제사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바로 탄갱신이 인간에게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석탄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동지를 절기의 기점으로 삼아 동지이후부터는 날이 하루하루 길어지며 봄이 곧 오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납일(臘日)

음력 12월 8일인데, 랍(臘)이란 원래 섣달에 지내는 제사의 이름이어서 랍일이란 섣달에 지내는 제사의 날이란 뜻이다. 또 8신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하여 납팔절(臘八節)이라고도 한다. 12월 8일은 석가모니가 득도(得道) 한 날이어서 불교의 명절이기 하다. 그래서 불사(佛寺)에서는 이날 불경을 암송하고 아울러 잡곡과 과일을 넣어 죽을 쑤어 불공을 드리는데, 이것을 '불죽(佛粥)'이라고 한다. 후세에 와서는 민간에서도 유행하여 촌민들이 잡곡으로 죽을 쑤어 먹으며 북을 치며 금강력사(金剛力士)로 분장하고 역질을 쪽기도 한다.
Posted by Goo M.D. Trackback 0 Comment 0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국의 10대 명승지



1. 안휘황산(安徽黃山)

황산이란 이름은 중국의 전설적인 제왕의 하나인 황제(皇帝)가 이곳에서 수련을 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황산에서 돌아 오면 다시는 다른 산을 쳐다 보지 않는다"(黃山歸來不着岳)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세가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황산은 전체가 붉은색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식 이름이 붙은 봉우리만도 72개에 이른다. 그 중 천도(天都),연화(蓮花),광명(光明)봉이 3대 주봉(三大主峰)으로 손꼽히고 있다. 황산은 운곡사(雲谷寺),송곡암(松谷庵)등의 명승과 호수,계곡,폭포등의 절경을 끼고 있고 온천으로도 유명하다. 황산의 등산로는 2,804m로 여행객이 오르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중국인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먼저 소개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사진은 황산의 운해(雲海)이다.


2. 계림산수(桂林山水)

계림은 "천하 산수의 으뜸"(山水甲天下)이라는 명성을 얻을 만큼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해발 50~100m내외의 기암 봉우리와 그 사이를 흐르는 이 강의 맑고 깨끗한 물이 어우러져 천태만상의 절경을 엮어 내고 있다. 이 밖에 각 산봉우리에는 수많은 천연동굴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내부경관이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간혹 우리는 주위에서 산수도(山水圖)중 기암절벽 사이로 흐르는 강물에 노젓는 뱃사공의 그림을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계림은 한마디로 그림 그자체이고 중국의 산수도 중 이곳을 소재로 그린 산수도가 상당히 많이 있으며 여행안내 초기 화면도 계림의 사진이다.


3. 장강삼협(長江三峽)

장강(長江:양자강)이 무산(武山)을 관통하면서 형성된 협곡을 가리킨다. 서쪽으로는 사천성의 봉절현(奉節縣), 백제성(白帝城)에서 출발하여 동으로는 호북성 의창시(宜昌市) 남율관(南律關)에 이르기까지 총 연장이 240Km에 달한다. 물살이 쎄고 웅장하여 장관을 이루며 경관 또한 빼어나다.

현재 중국에서는 이 양자강 줄기를 막아 댐 공사를 하고있다. 그것이 삼협댐이다. 삼협댐은 앞으로 27년간 공사가 지속되고 이 댐공사로 인하여 수몰되는 성(城)만해도 몇개에 이르며 이 공사로 인하여 이주하는 인원만도 앞으로 17년이나 지속되는 세계에서 찻아보기 힘든 큰 공사이다. 중국이 아니면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할 공사이다.


4. 만리장성(萬里長城)

"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다."(不到長城 非好漢)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만리장성은 중국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중국에 장성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세기 무렵인 춘추 전국시대부터이다. 그러나 "만리장성"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은 진시황 때이다.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한 뒤 과거에 각 제후국들이 산발적으로 건설한 장성을 토대로 총 연장 만리(萬里)가 넘는 대규모의 장성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당시 장성 구축의 주요 목적은 북방 흉노족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이후 장성은 여러 왕조에 걸친 지속적인 보수와 수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팔달령장성"과 "모전욕장성"은 명나라 때 완성된 것이다.


5. 북경고궁(北京故宮)

바로 자금성(紫禁城)을 말한다. 명,청 양대 왕조의 황궁으로 중국 역대 제왕의 궁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자금성은 하늘의 천제(天帝)가 거주 한다는 "자미단(紫微壇) 에서 앞 글자를 따고 역대 제왕의 궁성은 "금지"(禁地: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라는 의미를 더해 붙혀진 이름이다. 자금성은 동서가 753m, 남북이 961m의 좌우 대칭식 정사각형 모양의 궁전으로 성의 높이는 10m, 오늘날에는 고궁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6. 피서산장(避署山莊)

일명 열하행궁(熱河行宮)이라고 하거나 혹은 승덕리궁(承德離宮)이라고도 불리는 황제의 여름 피서 별장이다. 하북성 승덕시(承德市)북부에 위치해 있다. 청의 강희(康熙)연간에 건설을 시작해 87년 뒤인 건륭제때 완공됐다. 처음에는 황제의 사냥에 이용할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위 두 황제의 여러차례에 걸친 확대건설 사업 끝에 여름에는 피서를 즐기고 가을에는 사냥을 하며 동시에 신하들을 접견해 정사(政事)를 처리하기도 하는 다용도 별장으로 이용됐다. 기후가 선선해 피서를 즐기기 적당한 데다 주변의 경치도 수려해 "피서산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피서산장은 중국 역사상 건립된 황실별장 가운데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하고 있다.


7. 진릉 병마용

섬서성 임동현(臨潼縣)에서 발굴된 진시황의 무덤과 그 안에 매장된 흙으로 빚은 실물 크기의 병사 인형들을 가리킨다. 진시황의 무덤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성의 둘레가 2,500m를 넘으며 외성의 둘레가 6,200m에 이른다. 무덤의 높이는 47.6이다. 병마용은 무덤의 동쪽에 늘어서 있으며 만여개에 달하는 병마용 외에도 활,차, 각종 실전 무기등이 실물처럼 만들어져 함께 매장돼 있다. 1979년 박물관이 건립돼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8. 백두산(白頭山)

백두산 천지 등반코스 : 백두산은 우리나라 영토에 속하지만, 우리나라 땅을 밟고 갈 수 없는 곳으로 아쉽지만 현재는 중국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 우리가 중국여행을 하고자 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중국 땅으로나마 올라 갈 수 있는 백두산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정기를 쏟아내고 있는 백두산을 돌아보면서 주변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의 생활모습까지도 둘러보는 우리의 구미를 당기는 여행코스이다.

우리 민족의 자취를 돌아보는 코스 :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중국과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이어져 왔다. 이 속에서 현재 중국 땅이 한때는 우리나라의 영토에 속하는 부분이었던 곳에 많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돌아 보면 우리 영토였던 곳의 아쉬움을 확인할 수 있는 코스이다.

백두산 등정 교통편 : 백두산 입구에서부터 천지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프를 이용해야 한다. 물론 걸어서 갈 수도 있으나 자신이 타고 온 차를 이용해 천지까지 올라 갈 수는 없다. 자신이 타고 온 차는 백두산 입구에 주차해야 한다. 지프 이용료는 외국인이 100유안 ,내국인이 50유안이다. 지프의 노선이 왼쪽,오른쪽으로 나누어져 있어 장백폭포와 천지 두곳을 모두 볼수는 없으므로 잘 선택해야 한다.


9. 항주 서호(抗州西湖)

항주시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타원형의 호수이다. 전체면적은 5.66평방 Km에 달한다. 전체 호수는 5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수 가운데는 3개의 섬이 솟아 있다. 서호의 물은 매우 맑고 투명해서 수심 50m의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이고, 물위에 산의 그림자가 비칠 때면 더욱 아름답다. 서호 주변에는 여러시대에 건립된 각종 누각,불탑등이 남아 있다.


10. 소주 원림(蘇州園林)

소주시에 위치한 크고 작은 정원지대를 통틀어 "소주 원림"이라고 한 조성한 것들로 남방 조림건축 예술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보통 정원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으나 그 안에 작은 산을 만들고 못을 팠으며 각종 수목을 재배하여 최대한 자연 풍치에 가깝도록 만들어 졌다. 소주 원림 가운데 특히 저명한 것으로는 창랑정(滄浪亭),사자림(獅子林),졸정림(拙政林),유원(留園) 의 4대명원(四大名園)등이다. 이들 각각은 송,원,명,청 시대의 건축양식을 대표하고 있다
Posted by Goo M.D. Trackback 0 Comment 0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민족과 인구

중국은 전 인구의 92%가 한족이며 그외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55개 소수민족중에서는 장족이 인구가 가장 많은 소수민족으로 90년 인구조사시 1,549만명이었다. 그 밖에 회족,위구르족,티베트족의 비중이 큰 편이며 중국 정부는 주요 소수민족에 대해 자치권을 확대해 주고 있다. 중국에는 모두 148개의 자치지역이 있는데 이는 전국토의 63.7%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5개의 자치구,30개의 자치주,1백13개의 자치현이 등이 있다. 조선족은 인구수가 약 200만명으로 소수민족 가운데 13번째로 많으며 주로 동북 3성 지역에 살고 있다. 특히 길림성 연변지역은 1952년 연변 조선족 자치주로 인정되었으며 현재 약 82만족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

중국의 인구는 95.2.15.을 기해 공식적으로 12억으로 발표되었다. 중국 정부는 이날을 "중국 12억 인구일"로 정하여 대회를 소집, 기념하고 금세기말까지 총 인구를 13억 이내로 통제하기로 결정하였다. 94년도 출생율은 일천명당 17.7명으로, 지난 49년 중국정부 수립이래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이는 강력한 인구억제 정책과 가임여성의 감소, 만혼추세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과학원에서는 2025년에 중국인구가 15억명을 넘어서리라는 예상과 함께 한계인구를 16억명으로 추정하고 법으로 '1가구 1자녀'의 산아제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법을 어기면 직장에서 심한 불이익을 당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남아선호사상은 정부의 산아제한정책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간혹 허용된 자녀수를 벗어나 낳은 자녀를 제때에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아이를 '헤이하이쯔(黑孩子)'라고도 하는데 사회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산아제한제도는 특히 한족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으나 소수민족에게는 인구수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되고 있다.
Posted by Goo M.D. Trackback 0 Comment 0

댓글을 달아 주세요